EUROPE TRAVEL ( 09. 1. 12 )/in my B ( FRANCE)

09.01.16 베르사유 궁전 > <

C_PLAN 2011. 1. 26. 14:02

우리는 서둘러서 베르사유 궁전으로 향했다. R선 - 이층 기차같은 것이다.
일본으로 따지면 JR 같은 것ㅎ 유레일을 소지하면 R선도 문제 없이 탈 수있다.
표 창구에서 유레일을 보여주면 된다. 우리는 다행이도 로마행 기차를 끊으면서 START 해서 !
R선도 문제 없이 공ㅉㅏ로!!!!



프랑스 R선 ! 베르사유 가는 길의 이층 기차.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높은 환율로 인하여 한국 사람은 더더군다나 없었다.
홍어와 나는 프랑스 훈남을 찍었다. 아니 실제로 등지고 있는 사람이 훈남이였다.
같이 찍자로 하고 싶었으나. 진짜 무슨 사업이야기 하듯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있어서 패스~!!!




베르사유 가는 길목, 버스를 타고 정말 슉! 갈 수있지만 15분 정도 걸으면 베르사유 궁전에 간다는 홍어의 말을 듣고 우리는 걷기로했다.
파리의 모든 곳은 낭만으로 물들어 있으니간 말이다.

가게 하나하나 가계만의 고유의 장식들이 반겼다.
홍어와 나는 베르사유 궁전을 가기전에 각 골목골목을 다 걸었다.
골목 골목마다 느낌이 다 달랐다. 대문을 가게마다 개성있게 해서 그런것같았다.





걷다보니 금방 베르사유 궁전에 도착했다. 많은 외국인들이 앞에서 사진을 찌고 난리도 아니였다.
심지어 엄청크 짐가방을 들고 기념품을 파는 사람들도 많았다.

베르사유 궁전은 사진 한컷에 다 들어오기 힘든 정도였다. 그래서 파노라마로 찍어야만했다.
정문부터 금장식은 위엄있게있었다.  그리고 경비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표사는 곳을 찾기 보다는 마당이라고 해야하나? 입구 부터 건물 밖 부분을 샅샅이 구경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길래, 뭐일까 싶어서 따라갔더니.

휴지들고 돈통 들고 있는 할머니가 문을 열자마자 앉아있었고. '너는 뭐냐' 라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알고보니 화장실.
진짜 이놈의 나라는 화장실도 마음데로 못가게 돈을 내야해.

홍어에게 쿨하게 ' 여긴 화장실 ' 이라고 말하고 돌아 다녔다.




베르사유 궁전의 공원, 우리가 갔을땐 겨울이라서 그런지. 귀신이 나올 것만 같았고 공사중이였다.
홍어는 이것을 못봐서 안타깝다고 했다.
하지만, 여름에 여행하는건 너무 싫다고 했다. 그럼 뭐 어쩌라는건지 아무래도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한국으로 옮겨와야할듯.

우리가 사진을 찍자 사람들이 뒤에서 뭔가? 하고 봤다가 아 여기가 공원이구나라는 식으로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사진을 찍고 서둘러서 자리를 옮겼다.
표를 사는 곳이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우리가 멍청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밖으로 나와서 들어가는데 왼편에 조그만한 상점같은 곳이 있었다. 들어가보니 사람들이 줄을 서서 표를 끊고 있었다.
우리는 순서를 기다리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진짜 환율 탓인지 한국인 사람도 안보이고 가이드도 안보였다.
만약 한국인 가이드 무리가 있으면 살짝 끼어서 설명을 듣고 싶었는데 말이다. 없었다 ㅜㅜㅜㅜㅜㅜㅜㅜ 그점이 조금 아쉬웠다.

우리는 국제학생증을 보여주고, 표를 할인 받아서 샀다. 홍어가 진짜 철저하게 준비한 덕분이다.
국제학생증으로 항공권도 싸게사고 유레일도 싸게 사고 할인도 받고. 다만 아쉽다면. 우리가 미술학도나 건축학도였음
반값인가? 공짜였을텐데 말이다. 그점이 무척 아쉬웠다.




진짜 화려함의 끝이였다. 왜 국민들이 반발을 일으켰는지도 알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프랑스 왕족이였다면 엄청나게 뿌듯했을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화려함을 맛보면서 맨날 살았을 테니깐 하루하루가 예술과 함께 있는 집 말이다.
그러니깐, 철모르는 소리를 했겠지 밥달라니가 밥없음 빵먹으면 되지 않냐는 식의 말이 나왔으니깐 말이다.
진짜 알다가도 모를 여자였네.
그림 하나하나다 금테를 두르고 있었으며 방의 칸칸마다 놀수 있게, 아니면 공부할 수있게, 잘수있게 다 해놓았다.

마치 방하나는 침실, 방하나는 공부방, 하나는 옷방, 하나는 화장대방 등등 그냥 평민이생각치도 못할 집을 만들어 놓았다.


초반 시작도 안했는데 아침부터 너무 일찍 빨빨 거리고 돌아다녀서 한 곳에서 쉬는 여유를 보였다.
창분으로 공원이보였다. 속으로 진짜 이여자를 환상 속에서 살았고만, 이라는 생각이 격하게 들었다.
누구나원하는 집을 꿈을 꾸며 살았는데 이여자는 현실에서 살다 죽었다.
조금, 아니 엄청 많이 부러웠다. 창문은 어디서든 공원을 볼수 있었다. 여름에 보면 정말 매우 많이 끈내주게 예쁜 공원을
끼고 살았던 것이다. 이렇게 부러운 여자는 없을 것이다.

얼마나 국민, 아니 백성이 뼈골이 빠졌는가를 알수 있었다. 이 방한칸 없고 백성들에게 돌려주었다면
굶어죽는 백성 한명도 없을꺼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샹들리에부터 벽면은 그저 사치 덩어리였다. 그래도 사람들은 보면서 다들 부러워했을 꺼다 ㅎ



베르사유 궁전은 하루 종일 있어도 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사실, 파리라는 곳은 한달 내내 머물러도 좋을 도시였다. 베르사유 궁전은 한 시대의 여인의 꿈을 현실로 이룬 곳같았다.
나도 이런 집하나 짓고 싶을 뿐이다. 시골로 내려가서 동을 통째로 사서 지어야하나
솔직히, 베르사유는 백문이 불여일견. 진짜 가서 직접 봐야하는 곳이다.

안봤으면 말을 말라는 정도의 찬사보다 더한 찬사를 해야하지만. 무슨 찬사를 해야하나 싶을정도.
우리나라 경복궁도 재건 할때 그렇게 수천명 아니 수만명이 운명해서 지금의 경복궁이 존재 하듯.
베르사유도 그러하지 않은가싶다. 그당시에는 죽일년이였지만 지금 후세에게 좋은 건물을 선사하듯이 말이다.





 우리는 마뤼앙투아눼트 님의 친정 식구들과 그의 측근들이 살았던 동네를 구경 가기 위해서 서둘러서 나왔다.
자기 집을 그리워하고 부모님을 그리워 하는 마뤼앙투아눼트를 위해서  루이 16세가 선물한 마을.
여름이였다면 자전거도 빌려주고 꼬마 빨간색 기차 같은 것도 있어서 여기를 다 돈다고 하던데. 진심 돈을 쓰겠다고 해도 보이지 않아서
우리는 열심히 걸었다. 남들보다 빠르게 남들보다 많이.
나중에 우리 걸은 걸 듣던 민박 사람들은 자기 같은면 안가고 돌아왔을꺼라고 할 정도로 유럽여행에서 제일 많이 제일 빡세게 걸은 곳이다.
가는 길에 진짜 한국이였다면 택시를 탔을 것이다.

베르사유 이쪽은 지나다니는 버스도 별로 없었으며 우리가 걸어가는 곳은 관광객도 없는 정도였다.
그냥 우리는 우리의 지도와 감을 믿고 무조건 걸어야만 했다.